토대위에 명조 중기에 만들어진 뢰상관이 있어 뢰대라라고 불렀으며 고대에 천둥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곳이었다.
뢰대한묘가 유명해진것은 이곳에서 동분마가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1969년 한농민이 방공호를 파다가 뢰대 아래에서 동한말기의 대형 전실묘를 발견했고 여기에서 금,은,동,철,옥,뼈,돌,자기등 진귀한 문물231점과 고대 화폐3만닢이 출토되었다
천마(한혈마)를 획득한 무제는 다시 흉노 총공격에 나서, 하서주랑의 흉노 세력들을 몰아냈다. 거기에 무위·장액·주천·돈황이라는 4군을 설치하고 서역으로 통하는 길을 확보했다. 실크로드는 당나라 때 본격적으로 활성화 되지만, 사실 토대는 한 무제가 만든 것이었다.
말(馬)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려면 실크로드의 개척자 장건(張騫)을 등장시켜야 한다. 한나라의 대(對)흉노 전쟁에 반드시 필요했던 말을 무제에게 소개한 인물이 장건이었던 것. 때는 전한 무제. 흉노와의 전쟁 준비에 몰두하던 한 무제 유철의 귀에 솔깃한 이야기가 전해졌다. “흉노는 월지의 왕을 격파하고 그 해골에 술을 담아 마시고 있습니다. 도망간 월지 사람들은 흉노를 원수로 여겨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들과 한편이 되어 흉노를 칠 나라가 없습니다.” 무제는 즉각 월지(쿠산 왕조)에 보낼 사자를 모집했고, 이 때 장건이 나섰다. 기원전 139년. 장건은 서역 출신의 노예 감부(甘父)를 안내인 삼아, 100여명의 건장한 사내들을 데리고 월지국을 향해 하서주랑으로 나아갔다.
당시 하서주랑 일대는 흉노족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흉노가 무제의 사신을 놓칠 리 없었다. 결국 붙잡혀 10년이나 흉노의 땅에 유배되고 말았다. 장건은 그러나 탈출에 성공해 월지국으로 달려갔다. 월지왕을 만나 흉노를 치자고 설득했으나, 월지왕은 흉노를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귀국길에 또 다시 흉노에 붙잡혔다. 간신히 빠져나와 13년 만에 장안에 돌아온 사람은 - 동행했던 100여명의 사람들은 다 죽고 - 장건과 흉노족 부인, 그리고 감부뿐이었다.
장건은 서역 사정을 무제에게 자세히 보고했다. 무제의 귀를 특히 자극한 말은 “대원(大宛.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 지방)에는 포도주가 있고, 좋은 말이 많은데, 말은 피땀을 흘립니다. 그 말의 선조는 천마의 아들입니다”라는 보고였다. 말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 흉노 기병들에 한나라 군대가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중국의 말은 체구도 작고 달리는 것도 느려 흉노의 말에 비해 전투능력이 현저하게 뒤쳐졌다. 대원의 천마를 얻는다는 것은 현대식으로 말하면 외국에서 최신 무기를 도입하는 격이었다.
기원전 104년(태초 4). 한 무제는 이사(貳師)장군 이광리(李廣利)를 사령관으로 한 원정군을 파견했다. ‘이사’는 한혈마가 있다는 대원의 성(城) 이름. 1차 원정에 실패한 이광리가 기원전 102년 귀환했을 때, 한 무제는 “말을 가져오지 않고는 옥문관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며 돌려보냈다. 이광리는 돈황에 머물며 군마를 정돈한 다음 다시 대원으로 출정했다. 명마 획득을 위해 대원과 공방하기 4년. 이광리는 한혈마 3,000마리를 이끌고 장안으로 개선했다. 너무나 기뻐한 무제는 승전환송식에서 ‘서극천마(西極天馬)의 노래’를 불렀다.〈사기〉‘악부시집’에 노래가 전한다.
한 무제가 ‘천마의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한 이면엔, 원정에서 돌아오지 못한 무수한 사람들의 피가 있었다. 시대는 한참 뒤이지만, 당나라 이태백(701~762)이 읊은 ‘자야오가(子夜吳歌)에서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어찌됐던, 천마(한혈마)를 획득한 무제는 다시 흉노 총공격에 나서, 하서주랑의 흉노 세력들을 몰아냈다. 거기에 무위·장액·주천·돈황이라는 4군을 설치하고 서역으로 통하는 길을 확보했다. 실크로드는 당나라 때 본격적으로 활성화 되지만, 사실 토대는 한 무제가 만든 것이었다.
마답비연’은 청동으로 만들어져 ‘동분마(銅奔馬)’라고도 한다. ‘청동으로 만든 뛰어가는 말’ 이란 뜻. 강대한 흉노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한 무제가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서역의 천마를 모델로 조각한 것이 바로 동분마인지 모른다. 높이 35cm, 길이 40cm의 조그만 동상인데, 머리는 약간 왼쪽으로 돌리고 있다. 꼬리를 나부끼며 질주하는 두 앞발, 한 개의 뒷발은 하늘을 날고, 나머지 뒷발이 날아가는 제비의 등을 밟고 있다. 말발굽에 깔린 제비는 놀란 듯이 말을 쳐다본다. 서역을 분방하게 달리며, 대지를 호령하던 천마의 기상이 그대로 동상에 살아있는 것 같았다.
한나라 때의 하서4군 가운데 제일 먼저 만들어진 도시 -
대표하는,,,아니 실크로드를 상징하는 ‘날아가는 제비를 밟고 있는 말(馬踏飛燕)’이 출토된 뇌대(雷臺)로 ...
뇌대공원에 들어가니 온통 ‘마답비연’ 조각뿐이다. 진품은 감숙성 박물관에 전시돼있지만, 마답비연이 이곳에서 출토됐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렇게 해 놓은 것 같았다. 마답비연이 출토된 경위는 이렇다. 1969년. 중소국경 분쟁이 한창일 때, 중국 전역에서 방공호를 파는 운동이 진행됐다. 무위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지인들이 뇌대 밑에서 방공호를 팠다. 30m 쯤 파고 들어가자, 2000년 전 조성된 전한 시대의 마저자(磨咀者) 무덤으로 통하는 입구가 보였다한다. 유물은 이미 도굴당하고 없었으나, 세계를 놀라게 한 ‘마답비연’은 거기 있었다.
뇌대한묘에서 1969년 출토된 <행차의장대열> (동한 25~220>이다.
이 행차대열은 한나라 최다 수량의 완전한 행차 의장 대열로 14개조의 의장용군은 2개의 기사용, 4개의 창을 든 기마무사용
4개의 가지창을 든 기마무사용 및 도끼차, 주차, 수레차, 손 수레차로 구성되어있다.
뢰태한묘
방공호를 파려던 입구
뢰타이(뢰태) 한묘의 입구 (지하에 한나라때의 장수 부부 합장묘가 있다)
묘로 들어 가는 문(처음 부터 있었던것이 아니고 관광객을 위하여 만든것임)
내부..
(사진:이정길님)
나오며...
입구에 조형물.... 새끼업은사자상
도로변에 공사중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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