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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k⌒Road] 그 낯선 땅 (14) 무위-문묘

박근닷컴 2011. 9. 8. 22:31

 

문묘 (文廟: 유교 사당)

공자 돌아 가신 그 다음 해, 서기전 478년에 노나라 애공이 공자가 살던 집터에 세 칸 짜리 사당을 만든 게 문묘의 시초이며

지금의 곡부 문묘의 전신이다. 그리고 역대 황제들이 확장과 수리를 계속했는데 청나라 때에 이르러 곡부 문묘는 4백 66칸에

이르렀고 2천여 기의 비석이 있었다. 청나라말에 이르러 중국의 문묘는 북경, 남경, 무위, 대만 문묘를 포함하여 전국에

1천 5백 60여 곳에 있었다고 한다 .

중국의 3대 문묘- 북경,곡부,무위 문묘라 한다.

 

 

 

 

 

 

 

명()나라 때 세워진 사당으로 대지 점유 면적은 약 5만 ㎢이다. 

대전(殿)이 웅장하고 처마가 길게 뻗어 있어 마치 황가궁궐의 건축군을 연상케 한다. 

 

 

 

 

 

 

 

 

 

 

 

 

 

 

 

 

 

 

 

 

 

 

 

 

 

 

 

 

萬世師表!!!  한 세기가  100년이니까 萬世는 100만년 !!

영원히 만인의 스승으로 칭송 받을 만한 분이라는 뜻

 

 

공자상

 

 

공자상앞에 소머리...

 

 

 

공자상과 공문십철(孔門十哲)이 있는 사당(공문십철-공자의 제자들)

공문십철(孔門十哲) :안회(顔回), 민자건(閔子騫), 염백우, 중궁(仲弓),  재아(宰我), 자공(子貢),  염유, 계로(季路), 자유(子游)자하(子夏) 

덕행으로 뛰어난 제자     :  안회   민자건   염백우   중궁

언변에 뛰어난 제자       :  재여   자공 

정사(政事)에 뛰어난 제자  :  염유   계

문학에 특출한 제자       :  자유   자하

 

 

 

 

 

 

 

 

 

 

 

 

 

 

 

 

 

 

 

 

 

 

문묘를 다녀온후... 공자의 후손이라는 분이 와인을 돌린다.

 

 

 

 

 

 

 

 

 

사람이 사는 흙집이다..

 

 

 

 

 

 

 

 

사막의 풀들...

 

 

 

 

휴게소...

 

 

 

 

무위에서 장액가는 고속도로에서 만리장성

무위를 지나며 판축으로 싸올라간 황토측대들 만리장성의 토성이 길게 이어져 있다....봉황대도 보인다.
쭉쭉뻗은 백양나무 초원은 사라지고 넓디넓은 사막으로...

 

 

 


아마 이 길을 따라 삼장법사가 인도를 향해 걸었을 것이고 혜초가 인도에서 중국을 향해 귀국 길을 재촉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 벌판들이 서서히 자갈밭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막으로 들어서는 모양이다.
자갈 밭 사이로 띄엄띄엄 오아시스가 등장한다. 오아시스라고 해서 사하라 사막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소규모의 오아시스가 아니고 여긴 대규모이다.

기련산맥에서 눈 녹은 물이 흘러내려 대규모의 오아시스를 이루고 있다.
산엔 나무 한 포기도 없는데 여기 분지는 이렇게 비옥하다니
난주를 지나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를 잇는 무위, 장액, 주천, 돈황 등의 도시들이 늘어선 통로를 한나라 시대부터 하서회랑(河西回廊)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이 하서회랑의 통로를 따라 줄기차게 서쪽으로만 달린다.

무위의 옛 이름은 양주이다...이제 장액(장예) 로...가서  대불사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