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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k⌒Road] 그 낯선 땅 (18) 가욕관 - 종고루/위진벽화묘

박근닷컴 2011. 9. 9. 01:16

 

 종고루 (차창관광)

 

 

 

 

 

 

 

 

 

 

 

 

 

 

 

 

  

 

 

 

 

 

위진벽화묘

 

버스는 아주 넓은 들판 같은 황량한 자갈 밭에 선다. 자갈 밭 가운데 조그만 건물이 하나 있다.

 

 

좁은 벽돌 통로를 따라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면

세개의 방에 이른다. 방에는 설 수 있다.

하나는 거실, 또 하나는 시신을 두었던 곳, 그리고 또 하나는 생활공간 등을 두었다.

그 공간의 벽 일부에 그때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벽화를 그려놓았다.

 

이곳의 시신은 박물관에 있으며 또한 부장품도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자갈모래밭에 이 분묘를 어떻게

발견하였는가를 물었더니 농부가 이곳을 지나다가 발견하였다고 한다.

 

묘실의 깊이가 3단계로 깊이 내려 갔다.

9m 깊이에 물이 있기 때문에 이곳 깊이로서는 물이 걱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주 넓은 들판 같은 자갈 모래 밭에 분묘 하나를 발굴하여 공개하고 있다.

이곳에 이런 묘가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가욕관 시내에서 약 20km 떨어진 사막 가운데에 위진 시대(조조, 유비, 손권 등의 삼국시대)의 고분이

약 1,000여개가 있는데, 이중 10여개가 발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다량의 벽화가 출토되어 지하 화랑이라고 함. 

벽 전체에 그린 것도 있고, 벽돌 하나 하나에 그려서 쌓아 놓은 것도 있는데

 모두 선명한 색체와 기술력이 돋보인다.

벽화의 내용도 농경, 목축, 수렵, 연회 등 매우 다양해 당시의 정치, 경제, 문화 등

고대 중국 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내부는 사진을 찍지 못한다.

 

 

인터넷- 차이나투어- 에서 가져온 사진임...

 

 

- 차이나투어 에서 가져온글-

세계 최대의 지하화랑(地下畵廊)으로 불리는 위진벽화묘(魏晉壁畵墓)는 가욕관시 동북쪽 20㎞, 신청샹(新城鄕) 경내 황량한 황무지  지하에 있다. 이 곳은 감숙성을 관통하는 하서회랑의 동으로는 주천(酒泉), 서로는 옥문(玉門)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주요 길목이다.

이곳에는 위진 시대(220~419년)에 조성한 약 1,400여 개의 지하무덤이 기련산(祁連山) 줄기 아래 즐비하다. 위진 시대의 하서회랑 지역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실크로드를 통한 중계무역이 발달하고 서역과 내지의 문화가 서로 융화되는 번영의 시기였다. 그 번영의 정도를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 바로 위진벽화묘이다. 묘지는 구조에 따라 이실묘(二室墓)와 삼실묘(三室墓) 두 가지로 구분한다. 이실묘에는 전실과 후실이 있고, 전실 옆 측면에는 작은 곁방이 있다. 삼실묘에는 전실, 중실, 후실이 있고, 전실 양 측면에 작은 곁방이 있다. 두 묘지 모두 지면에서 사선으로 5m~11m의 깊이로 땅을 파고 들어가 일정한 깊이에서 다시 수평으로 넓이 2m, 길이 20~30m를 판 후, 석실을 만들고 내부를 벽돌로 쌓았다. 벽돌 위에는 꽃무늬 혹은 구름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의 묘지는 당시 중원에서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서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1972년부터 1979년까지 많은 무덤들 중에서 10여 개만을 발굴하였는데 대부분의 묘지 안에서 채색벽화가 발견되었다. 고분에서 발견된 660폭의 채색벽화는 모두 벽돌로 만든 지하 석실의 벽에 선명한 색으로 당시의 생활을 재현한 그림이다. 목축, 농경, 군사, 사냥, 연회, 무용, 의복, 생활용구, 건축, 도안 등 ‘민속화랑’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정도로 그림의 내용이 다양하다. 그림 하나하나가 묘지의 주인이 생활하던 모습을 손으로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림만 보아도 묘지 주인의 지위, 재산 정도, 취미 활동 등을 잘 파악할 수 있다. 현재는 관광객에게 6호와 7호 묘실만을 개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