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례家家禮로 발달한 한국의 제사 예법
제사 예법이란 제사를 지내는 방법을 말한다. 그 기원은 기원 전후 1세기경에 만들어진 『예기禮記』에서부터 비롯되었다. 13세기 주자(朱子, 1130~1200)의 『가례家禮』가 유입되면서 우리의 제사 전통은 유교식으로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조선은 중국과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처음부터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선조들은 중국식을 조선식으로 맞추기 위해 노력한 결과 '예학禮學'을 탄생시키고, 200여 종이나 되는 예서禮書를 발간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의례 해석에 차이가 발생하게 되고 이것이 '가가례家家禮'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남의 제사에 밤 놔라 배 놔라 하지 마라", "도랑 건너면 집사하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생겨날 정도가 되었다.
과일은 홀수가 아니라 짝수로 차려야
가장 민감한 것은 역시 음식 중에서도 과일과 관련된 숫자의 함정이다. "과일은 홀수로 써야 한다"는 관념이 그것이다. 과일 접시 수가 홀수로 표시된 것은 율곡(栗谷, 1536~1584) 선생이 지은 『격몽요결擊蒙要訣』 뿐이다. 이 외에는 과일을 홀수로 쓰라는 규정은 없다. 『예기』, 『교특생郊特牲』의 각주에 의하면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정鼎과 조俎에 담는 것은 하늘에서 나는 것을 주로 하는데 하늘에서 나는 것은 양陽에 속하기 때문에 그 숫자를 홀수로 하고, 변과 두豆에 담는 것은 땅에서 나는 것을 주로 하는데 땅에서 나는 것은 음陰에 속하기 때문에 그 숫자를 짝수로 하는 것이다." 하였다. 변과 두에 담는 제물이 바로 과일류이다. 또한 『가례』나 『사례편람四禮便覽』 등 접하기 쉬운 예서들에 의하면 과일은 6그릇을 쓰는데, 없으면 4그릇이나 2그릇을 쓴다고 하여 짝수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근거해 볼 때 생선과 고기는 홀수로 쓰는 것이 옳고 과실과 소채는 짝수로 쓰는 것이 옳다고 봐야 한다. 특히 제상 진설에 음양의 원리를 적용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한민족의 홀수 선호가 과일도 홀수로 차리게 해
과일은 홀수로 써야 한다는 주장이 범람하는 것은 한민족의 '홀수(기수, 奇數) 선호 관념'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삼세번', '삼'을 선호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고, 이를 모든 생활에 적용하여도 좋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에 따라 예서를 충실히 연구하지 않고 관념적으로만 해석한 결과 과일의 수 역시 홀수로 규정해 버리게 된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한 접시에 올리는 과일의 수를 홀수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만약 이 원리를 따른다면 과일의 핵심인 대추나 밤을 어떻게 홀수로 세어서 차린단 말인가?
과일에 대한 지나친 의미부여는 금물
제사에 차리는 과일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대추는 씨가 하나이기 때문에 임금을 상징하고, 밤은 한 송이에 3톨이 들어 있으므로 삼정승을 상징하며, 감은 씨가 여섯 개이므로 육판서를, 그리고 배는 씨가 8개이므로 팔도관찰사를 상징하기 때문에 이 네 가지 과일을 쓴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이러한 설명을 한 곳은 없다. 즉, 근거가 없다는 이야기다.
원래 제사는 벽장에 있는 음식으로 지낸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과일은 사계절 보관할 수 있는 것이 기본이 된다. 대추는 생대추와 말린 대추, 밤은 항아리에 넣어 땅에 묻어서 보관하고, 감은 홍시와 곶감으로 사시사철 보관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삼실과三實果가 제사음식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과일이 된 것이다.
생선의 머리는 서쪽으로 두어야 신도에 합당
제물을 진설할 때 생선의 머리를 동쪽으로 할 것인가 서쪽으로 할 것인가? 상당수의 민속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생선의 머리를 동쪽으로 두는 두동미서頭東尾西의 원칙을 보고하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 그러나 제사상에 음식을 진설할 때 생선의 머리를 동쪽으로 하라는 예서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가례원류家禮源流』에도 나와 있듯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밥상에는 생선의 머리를 동쪽으로 두도록 하고 있으나 제사상에서 생선의 머리는 서쪽으로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두동미서의 원인은 아마도 산 사람의 밥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생선의 배는 신위神位 쪽으로 가도록 규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생선의 배에 기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제상 진설의 방위는 신위를 중심으로 해야 혼란이 없어
생선의 머리를 서쪽으로 하는 것은 음양과도 연관되어 있다. 즉, 살아 있는 사람은 인도人道로서 동쪽(왼쪽)을 상위로 하고, 돌아가신 분은 신도神道로서 서쪽(오른쪽)을 상위로 한다는 것이 다. 이것이 제사에서 규정되는 이서위상以西爲上의 근거가 된다. 또한 의례를 행할 때 좌우의 기준을 무엇으로 하는가에 따라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가례』에서는 실제 방위가 어떻든 집의 마당 쪽인 향向이 상대적으로 남쪽이고, 집의 뒤꼍이 있는 좌坐가 상대적으로 북쪽이 된다. 그래서 제상을 차릴 때는 마당을 바라보도록 진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 신위 역시 남향하게 되고, 제사의 주체가 되는 신위를 중심으로 방향이나 방위의 기준을 잡아야 한다. 신위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제상의 그림에는 글씨가 거꾸로 쓰여 있는 것이다. 제사를 지내는 후손이 마음대로 자신을 기준으로 방향을 설정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남향한 신위를 중심으로 좌우를 구분하면 동쪽은 왼쪽, 서쪽은 오른쪽이 된다. 이는 좌청룡 우백호와 동일한 이치이다.
정에 따른다면 양위 합설도 가능
다른 제사와는 달리 기제사忌祭祀를 지낼 때는 해당되는 조상만 모실까(단설, 單設), 아니면 부부를 함께 모실까(합설, 合設)도 고민이다. 이미 퇴계(退溪, 1501~1570) 선생을 비롯한 선현들도 논란이 많았던 부분으로 단설이 정설이다. 왜냐하면 기일忌日은 조상이 돌아가신 날이어서 그날에 돌아가시지 않은 다른 배우자를 함께 모실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제사는 단순한 추모일의 개념을 넘어서서 종교 행위로 기능하였고, 인정에 따라 합설을 하는 집안도 많아지게 되었다.
여성이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 올바른 예법
제사에 여성이 참여하는가? 답은 '여성은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이다. 제사에서 삼헌三獻을 할 때 초헌은 집안의 장손이 하고, 둘째 잔은 반드시 장손의 부인인 주부主婦가 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여성이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가가례는 제사에 온 정성을 쏟은 결과
가가례라고 하여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법을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예법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여 처음의 조그만 차이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가가례는 집안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안동지역에서는 유명한 현조顯祖의 불천위제사에는 반드시 날고기를 사용한다는 관습이 있다. 기제사에는 반드시 익힌 고기를 써야 한다는 예서의 규정에 어긋나지만 이 지역의 문화적 전통이 되었다. 이는 그 현조가 향교나 서원 등에 배향되어 있어 기제사에서도 이에 맞는 격식을 차려야 한다는 의식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먼 옛날 선조의 제삿날에 시루떡이 익지 않아 제사를 지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주부가 자결하는 사고가 난 이후로 제사에 시루떡을 사용하지 않는 집안도 있다. 사치를 방지하기 위해 조상이 생시 즐기던 음식을 제상에 올리지 못하도록 한 규정이 있음에도 집안마다 중박계, 쌈, 꼬막, 집장을 올리는 등 집안마다 많은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제사에 온 정성을 쏟은 결과 나타난 현상임을 기억해야 한다.
글 | 사진·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추진단 전시자료과장 사진·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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