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때만 해도 신라 목조
건축의 실상을 아는 정도가 15%가 될 듯 말 듯한 수준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추정이었습니다. (…) 무설전은 조선 초기 이익공(二翼工·촛가지가 둘로 된 익공)으로 하고, 비로전은 주변에 있는 건물보다 이전의
양식이었고 당시 고려 중기 이후의 양식밖에는 몰랐기 때문에 고려 중기 이후 양식으로 결정했습니다. 관음전은 대웅전보다 시기가 늦게 만들어진 것이라 조선 초기의 다포양식으로 아담하게 만들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얘기는 다시 말해서 불국사에 우리나라 목조
건축물의 모든 양식을 모으게 된 결과가 되고 말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970년대 초 불국사 수리복원의 총괄책임자였던 김정기 전 국립
문화재연구소장의 증언은 20세기 후반 이뤄진 각종
건축문화재 복원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당시 불국사 수리복원
건축설계를 맡았던 김동현 한국전통문화대 석좌교수는 “문화재를 복원하는 데 기준은 없다”며 “나는 중창(重創)이라든지, 재창(再創)이라든지 그런 말을 써야지 ‘옛날 그대로 되살린다’는 뜻의 복원(復原)이란 있을 수 없는 말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올해는 사적 제502호 ‘경주 불국사’ 복원
공사가 완료된 지 40년이 되고 지난 2008년 방화로 잿더미가 됐던 국보 제1호 ‘서울 숭례문’의 복구공사가 마무리되는 해다. 1970년 2월 공사에 착수해 1973년 6월 완공된 경북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 복원공사 관련 서류와 도면, 복원의 다양한 사례, 건축문화재의 활용 유형, 김영택 화백의 건축문화재 펜화 그림, 어린이 건축문화재 그리기 공모전 수상작 등 모두 5개 부분으로 구성된 전시회가 열린다. 이와 함께 안경 없이 55인치 초대형 디스플레이를 통해 부여 정림사 등 건축문화재를 삼차원(3D) 입체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된다.
한양대박물관(관장 이희수)은 15일부터 2013년 2월23일까지 교내 박물관 2, 3, 4층 기획전시실에서 ‘한국건축문화재 복원과 창조의 경계(境界·警戒)’전을 개최한다. 한양대 건축학부 동아시아건축역사
연구실과 함께하는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건축문화재의 복원 문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여주는 전시다. 대다수 일반인들은 건축문화재가 어떻게 유지·
관리·복원되는지 알지 못하며 이를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전시회도 없었다. 전시의 핵심은 1∼3부다.
불국사 복원을 다룰 1부 전시에서는 40년 전 불국사 복원공사와 관련된 다양한 공문서를 비롯한 사진자료들이 전시된다. 구체적으로 당시 기업체의 기부금 명단과 기업체 총 책임자의 서명, 일간 및 월간 공사일지, 출장복명서, 자문회의록,
공사현장의 사진철 등이 모두 망라돼 있다. 상당수 자료들은 1970년대 당시 실제 복원공사의 현장감독이었던 유문용 한국문화재 수리기술자협회
상임이사가 일괄 기증한 것으로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
건축문화재 복원 분야에서 중앙정부가 주도한 첫 번째 국가적 사업이었던 불국사의 복원과정은 이를 둘러싼 복잡한 정치·경제·사회적 맥락을 짚어 볼 수 있는 매개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전시도록에 실린 김정기·김동현·유문용 씨 등 1970년대 불국사 복원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의 좌담이 눈길을 끈다. 1967년 콘크리트로 복원된 광화문처럼 불국사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콘크리트로 복원이 추진될 뻔했던 사연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2부는 복원의 다의성(多義性)과 다양한
방법론을 다룬다. 복원은 말 그대로 ‘원래대로 회복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수리(修理), 수복(修復), 이건(移建) 등으로 세분화된다. 2009년 문화재청에서 고시한 ‘역사적 건축물과 유적의 수리복원 및 관리에 관한 일반원칙’에 따르면, 수리는 문화재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훼손된 부분을 원상태로 고치는 행위이며 수복은 문화재의 원형을 부분적으로 잃거나 훼손된 경우 고증을 통해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행위를 말한다. 이곳에서는 건축문화재 복원을 위한 다양한 개념을 소개하고 수원 화성 및 행궁, 충남 부여
백제문화단지, 숭례문, 충남 예산 수덕사 등의 실례를 통해 이러한 원칙들이 어떻게 적용됐는지를 살펴본다.
3부에서는 복원된 건축문화재들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시각자료에 보이는 건축문화재를 다룬다. 근대부터 현재까지의 엽서와 사진, 교과서, 여행안내서, 우표, 관광기념품 등 다양한 시각자료의 소재로 활용돼 온 건축문화재를 통해 최근 들어와 관광 인프라를 충족시키기 위한 차원에서 진행되는 복원이 늘어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한다. 이는 건축문화재가 ‘관광자원’의 하나로 속성이 변화될 수 있음을 암시해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배원정 한양대 박물관 수석학예연구사는 “문화재 보존은 철학에 따라 개념을 달리하고 복원 역시 아무리 원형 고증에 충실하다 해도 결국은 현대의 창조물일 뿐”이라며 “복원이 창조와 경계
선상에 서 있다는 점이 우리가 이 시점에서 복원에 대해 경계하고 고민해야 하는 이유”라고 전시 의도를 밝혔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