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고생 수학여행 촬영
교토 고려미술관서 공개
81년 전 일본 여학생들은 난간이 허물어진 경주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 계단을 떼지어 올라갔다. 흙에 반쯤 파묻힌 채 방치된 괘릉 석인상 주위의 지게꾼을 쳐다보며 산책도 했다. 햇빛에 드러난 석굴암 인왕상 앞에서는 깔깔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고, 황량한 창경궁 뒤뜰과 경복궁 동쪽 귀퉁이로 쫓겨간 옛 광화문도 돌아보았다. 낡은 동영상엔 식민지 시절 우리 문화유산의 뒤안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경주, 평양 등지의 문화유산들과 경성(서울)의 고궁과 근대도시 풍경 등을 생생하게 담은 동영상이 발견됐다. 일본의 한국 문화재 전문 컬렉션인 교토 고려미술관은 1931년 교토제일고등여학교(현 교토부립오키고교) 학생들의 만주·조선 수학여행 영상물을 찾아내 최근 <한겨레>에 공개했다. 이 동영상은 지난달 초 고려미술관에서 개막한 조선 고고학의 개척자 고 아리미쓰 교이치의 추모전 전시장에 상영되고 있다. 해방 전 우리 문화유산 동영상이 발굴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16㎜ 필름으로 찍은 이 15분짜리 영상물은 1931년 5월, 조선·만주 수학여행 기록 일부를 편집한 것이다. 영상을 보면, 여행단이 교토에서 출발해 시모노세키를 거쳐 부산으로 간 뒤 울산(태화루·왜성 등), 경주(괘릉·불국사·석굴암·금관총·분황사·포석정 터 등), 경성(창경궁·경복궁·숭례문 등), 평양(을밀대·기자묘·낙랑고분 등)을 돌아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주목되는 영상은 퇴락한 경주 문화유산들의 풍경이다. 괘릉의 서역풍 무인상 등이 당시엔 흙에 상당 부분 파묻혔다는 사실과, 터널식으로 복원돼 노출된 석굴암과 헐벗은 토함산 진입로, 70년대 복원 전의 불국사와 석가탑, 허물어진 월성 석빙고 등의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 경성에서는 옛 고궁들과 근대 도시 가로 풍경이 여행단 동선을 따라 잇따라 눈에 잡힌다. 총독부 건립으로 경복궁 동쪽 현 국립민속박물관 들머리로 이전된 옛 광화문과, 경복궁 근정전·홍례문, 식물원·동물원이 들어선 옛 창경원 권역을 비롯해 최고 번화가였던 경성우편국 옆 혼마치(명동), 숭례문에서 본 근대 건물 아케이드, 남산에 있던 일본 신궁, 이정표가 서 있는 서울역 앞 거리 등이 영상으로 흘러간다. 평양에서는 대동강가 부벽루·을밀대 정경과, 곰방대 물고 학생들이 탄 배를 젓는 늙은 사공, 평양 권번(기생조합) 기생들의 전통 연희 등이 눈길을 끈다.
동영상은 본디 이 여학교 출신의 동문이 보관했다가 모교에 기증한 것을 수년 전 오타니대 박물관이 위탁받아 소장해왔다고 한다.
영상물은 아리미쓰 추모전이 끝나는 6월2일까지 현지 상영된다.
교토/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http://img.hani.co.kr/imgdb/resize/2012/0508/133644127159_20120508.JPG)
수학여행단을 맞은 경성 숭례문
경주, 평양, 서울 풍경 생생
교토 고려미술관에서 공개
81년 전 일본 여학생들은 난간이 허물어진 경주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 계단을 떼지어 올라갔다. 흙에 반쯤 파묻힌 채 방치된 괘릉 석인상 주위의 지게꾼을 쳐다보며 산책도 했다. 햇빛에 드러난 석굴암 인왕상 앞에서는 깔깔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고, 황량한 창경궁 뒤뜰과 경복궁 동쪽 귀퉁이로 쫓겨간 옛 광화문도 돌아보았다. 낡은 동영상엔 식민지 시절 우리 문화유산의 뒤안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수학여행단을 맞은 경성 숭례문 |
교토 고려미술관에서 공개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경주, 평양 등지의 문화유산들과 경성(서울)의 고궁과 근대도시 풍경 등을 생생하게 담은 동영상이 발견됐다. 일본의 한국 문화재 전문 컬렉션인 교토 고려미술관은 1931년 교토제일고등여학교(현 교토부립오키고교) 학생들의 만주·조선 수학여행 영상물을 찾아내 최근 <한겨레>에 공개했다. 이 동영상은 지난달 초 고려미술관에서 개막한 조선 고고학의 개척자 고 아리미쓰 교이치의 추모전 전시장에 상영되고 있다. 해방 전 우리 문화유산 동영상이 발굴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경복궁 근정전 계단 앞에서 포즈를 취한 수학여행단 |
경복궁 동쪽으로 쫓겨갔던 일제강점기의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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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필름으로 찍은 이 15분짜리 영상물은 1931년 5월, 조선·만주 수학여행 기록 일부를 편집한 것이다. 영상을 보면, 여행단이 교토에서 출발해 시모노세키를 거쳐 부산으로 간 뒤 울산(태화루·왜성 등), 경주(괘릉·불국사·석굴암·금관총·분황사·포석정 터 등), 경성(창경궁·경복궁·숭례문 등), 평양(을밀대·기자묘·낙랑고분 등)을 돌아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주목되는 영상은 퇴락한 경주 문화유산들의 풍경이다. 괘릉의 서역풍 무인상 등이 당시엔 흙에 상당 부분 파묻혔다는 사실과, 터널식으로 복원돼 노출된 석굴암과 헐벗은 토함산 진입로, 70년대 복원 전의 불국사와 석가탑, 허물어진 월성 석빙고 등의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 경성에서는 옛 고궁들과 근대 도시 가로 풍경이 여행단 동선을 따라 잇따라 눈에 잡힌다. 총독부 건립으로 경복궁 동쪽 현 국립민속박물관 들머리로 이전된 옛 광화문과, 경복궁 근정전·홍례문, 식물원·동물원이 들어선 옛 창경원 권역을 비롯해 최고 번화가였던 경성우편국 옆 혼마치(명동), 숭례문에서 본 근대 건물 아케이드, 남산에 있던 일본 신궁, 이정표가 서 있는 서울역 앞 거리 등이 영상으로 흘러간다. 평양에서는 대동강가 부벽루·을밀대 정경과, 곰방대 물고 학생들이 탄 배를 젓는 늙은 사공, 평양 권번(기생조합) 기생들의 전통 연희 등이 눈길을 끈다.
동영상은 본디 이 여학교 출신의 동문이 보관했다가 모교에 기증한 것을 수년 전 오타니대 박물관이 위탁받아 소장해왔다고 한다.
영상물은 아리미쓰 추모전이 끝나는 6월2일까지 현지 상영된다.
교토/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경성의 최고 번화가 혼마치(오늘날 명동입구) |
난간없는 불국사 계단을 막 올라가는 수학여행단 |
경주거리 |
경주 괘릉 앞으로 걸어가는 지게꾼 |
경주 괘릉 석인상 옆길로 걸어오는 도포쓴 남자 |
석굴암 입구 앞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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